관심 사용자

2018년 1월 5일 금요일

자연계에서 짐승은 본능으로 움직이고 인간은 "생각"으로 움직인다




때문에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爲人)도 그러하다"고
즉 인간성은 그 생각에 달렸다고
하나님 주신 지혜로 솔로몬은 통찰했었다





21세기 인생들에게 천사들을 통해 전달하신 하나님의 사진 편지(photo-letter)









감히 이 세상 신들인데 폭로 사진 같은 것을 찍도록
좌시하겠는가ㅡ어림도 없는 소리.
천사(들)의 작업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보는데
독자 여러분의 판단은 어떠신지.





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당분간 촬영자(필자)를 노출시키지 않는 이유는 오직 "아라비아 3년"








촬영자(필자)가 당분간 얼굴을 대중 앞에 드러내려 않는 이유는
거의 모든 사람과 스스로 원수를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각종 종교 교리를 상대로 
성경에 입각하여 모든 진실을 밝히고 있는지라
기득권 세력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어 좌시 방관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를 사전 예방하는 차원에서 모든 발표를 끝내기 전에는
일절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극심한 증오의 대상이 되니 각종 핍박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기피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고난 없는 전도는 있을 수도 없고 인생 구원에 필수 요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필자 역시 바울의 "3년간 아라비아 체류"(갈 1:16-18) 기간입니다.
워낙 뿌리 깊이 인위적 교리에 세뇌를 당한 터라 확고부동하게 성경대로
올바른 관점을 정립해 놓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뿐입니다. 
핍박이라는 외부적 방해 없이 말씀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 완료까지에는 이런 조처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로 남아 있어 "육신(자아중심)"에 있으면
즉 말씀 가운데 성장해 있지 못하면 분쟁이 필연입니다.
제각기 자기 선호하는 바를 따라(고전 1:12/3:4)
바울 파/派,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로 나누었듯이
루터파, 깔벵파 등으로 분파가 생깁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말했다"에 대한 관심을 버리시고
"누가 이런 말을 했으니 신뢰가 가고", 
"누가 했기 때문에 믿을 가치가 없다"로써 잣대를 대지 마시고
"성경과 일치하니까 또는 합하지 않으니까"로 가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항상 부지런히 읽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직접 성경을 통해 스스로 배우시고 깨달으시고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필자는 그 일에 오직 힌트를 드리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ㅡ오직 "소리"만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소리는 알아들으면 알아듣고 못알아들으면 못알아듣는 것입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고 내가 강요되는 것도 없습니다. 
듣기 싦으면 묵살하면 되고 그것으로 끝납니다. 
성령의 말씀이라 생각하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전도도 각자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요
교회를 가르침도 역시 각자의 양심에 스스로를 "추천"(고후 4:2)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 결과의 책임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한 마디 던져놓고 나몰라라는 식이란 뜻은 아닙니다.
야고보는 "함부로 선생이 되지 말라"고 충고 겸 경고를 했습니다.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는다"는 이유입니다. 
목회자 지망도 정말 불 타는 사명감이 없으면
아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막중한 책임을 어찌 감당하렵니까.
모세가 목회자의 사표인데 
"이 양떼들 버리시면 차라리 제 이름 생명책에서 지워 주십시오" 했습니다.  
자기 양떼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목자다운 목자라 하셨습니다(요 10:11).

당분간은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데 대해 
(예의상 부적절하다는 느낌이 드시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외국에서 보도되는 빅풋(Big Foot) 등도 필자가 목격했던 대로의 악령의 변장술



리더스 다이제스트 사가 간행한 세계 불가사의에 대한 책자를 보면
'빅풋'(거인과 같은 생김새의 괴물ㅡ또는 그런 거대 발자국을 남김에서 온 명칭)
을 촬영 혹은 목격한 이들의 증언이라면서
그 걸음걸이가 때로는 마치 허공에 부상한 채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하는데
바로 악령들이 자연계 육체로 스스로를 변환시켜 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DPA px 발자국도 그렇게 해서 생긴 것입니다.

필자가 과거 만난 악령도 바로 그런 유형입니다. 
따라서 필자만 본 것이 아니라 이미 외국에서도 
그런 '빅풋'이라는 이름으로 제법 알려지기 시작한 존재(들).
초자연계 몸이 자연계 육체로 변환되는 사례는
우리 주님의 부활하신 모습에서 역력히 드러납니다.
제자들에게 금방 나타나셨다가 이내 감쪽같이 사라지셨고
제자들에게 그 부활하신 몸을 보이시며
나는 살도 있고 뼈도 있다 하시면서
그 앞에서 음식을 잡수시기도 했습니다(눅 24:39-42). 

초자연계 몸의 초능력은 자연계 몸으로 얼마든 원하는 대로
변환 가능함을 이미 주님의 부활하신 몸으로 증명되었고
또 주님의 그러한 초자연계 몸의 부활에 대한 성경 기록의 진실성은 
오늘날 악령들의 변형술 또는 발자국 등으로 되물림해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발자국이 새 발자국도 아닌 짐승의 것인데도(사람 발자국은 물론 아니고)
몇 발자국 떼놓은 것이 박혀 있다가 갑자기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허공에 떴다가 잠깐 착지해서 걸은 뒤에는
곧장 다시 허공으로 떠 올랐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신/神(고후 4:4)들이 
지상에 내려 왔다가 올라갔다가 한 것이니 
인간을 꼼짝 못하게 장악하고 조종하는 압제자들.
첫 사람 아담은 비극으로 끝났으나
이제 그 빈 자리를 메꾸시고 그 위치를 회복하신 우리 주님 곧 "마지막 아담" 
즉 대칭 아담이시니 항상 주님과 함께 생활하기로
결사적으로 매달려(고전 7:32/고후 5:9)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힘쓰는" 나날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한 시도 저들의  속박과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주 절박한 상황에 현재 인생들이 놓여 있는 현실이니 항상 주의를 요합니다. 
그냥 강 건너의 일처럼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발 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이제는 실상을 안 이상 그에 마땅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상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천사에 대한 고찰 (5)





우리가 장차 "천사를 판단하는(고전 6:3) 위치에 있게 됨도
아담이 원래 영물들 위에 군림한 초자연계 존재였음을 말함이고,
여자가 긴 머리가 있는 것은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고전 11:10)라 했으니
여자가 영물들 다음에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아담(남자)이 영물들보다 먼저 창조되어
영물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사실과 대비되어 나오는 언급이다.
다시 말해 여자는 그러하나 남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함이니
남자의 머리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대칭 아담께서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한다"(벧전 3:22) 함도
이제 첫 사람 아담의 죄 값을 다 치르신
대칭 아담으로서 아담의 범죄 전 상태로
복귀하심을 이르는 표현 외에 달리 의미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로서의 위치라면 굳이 이런 표현이 필요 없는 것.

지금까지 천사나 그룹/스랍 간의 차이도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했다.
천사를 날개 달린 "그룹(cherub)"으로 항상 그려놓게 마련이고
사탄을 "그룹" 중 하나인 것처럼 오해한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사탄이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욕심에서 그렇다기보다
"옛 뱀"(계 12:9/20:2)이라는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 부린 꼼수.

한 때 인간 아래 있던 수하(手下)가 이 세상 신이 되어 있음을 알 때
인생들의 인식상 획기적인 변동이 있지 않을까 두려워 함이었던 것.
이런 점을 생각해도 얼마나 성경 해석이 엉망진창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순응하지 않을 때
사탄에 의해 완전히 헝클어져 있기가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입증.
계시록에 두 번이나 알아 듣기 쉽도록
사탄은 "옛 뱀" 곧 창세기에 나오는 그 옛 시절의 "뱀"이라고
밝혀 두어도 끝까지 고집대로 나가 무시해 온 것을 보면
알 만하지 않은가ㅡ인간의 현 실상을. 무슨 증거를 더 요구하리요.

이런 오묘하고도 민감한 영적 작용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방관자이듯 해서는 안되고
성경의 경고대로 하여 (벧전 5:8) 바짝 정신 차려야 하는 것.

사탄을 위시해서 악령들이나 네피림의 혼백들이 일시 즉 마지막 심판 전에
들어가는 구류소 또는 유치장 같은 곳이
무저갱(bottomless pit)인데 그곳의 염라대왕 격이 그 타락한 '그룹'.
당연하지 않은가. 같은 급의 천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룹'과 '스랍'은 계시록에 나오는 4 생물과 12 장로로 표현된다.
왜냐면 그들 외에 수많은 "천사"가 별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계 5:11).

그런즉 인간 외의 이러한 영물들이 실존함을 DPA pix로 확인됐으니 
마음의 요동 없이 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두드려
하나님의 친히 가르치심을 받는 은혜에 우리 모두 함께 들어갈 일이다. 


2017년 12월 19일 화요일

천사에 대한 고찰 (4)




성부와 성자께서 친히 나와 함께 계시는데 그러면 말 다 한 것이지
천사가 있어 경호원이라느니 수호 천사라느니 무슨 객쩍은 소리냐ㅡ
물론 그런 표현은 성경에 없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뜻인데
무엇하면 그런 말을 안쓰는 것도 좋다 상관 없는 일이다.

내게 할당된 천사라고 해서 꼭 내 옆에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니
영물은 우리 자연계 생물과는 달라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이기 때문.
천사가 의인 곁을 진을 쳐서 에워싸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고
항상 하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 얼굴을 뵙고 있다 해도 성경 그대로다.

우리의 자연계에 속한 뇌(腦)작용이 초자연계 몸일 경우와는
너무나 차이가 나므로 초자연계 일을 자연계적 관념으로
형상화하여 나타내기가 힘에 부치는 것이라 하면 대충 답이 될까.
어서 속히 초자연계 몸이 되어야지 하루가 갑갑하고 답답하다 하면 될까.

갑과 을이 둘이 하나되어 병인데 이것을 갑이라 보아도 되고
을이라고 해도 되는 한편 갑도 을도 아니라 할 수도 있다 하면
당장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굳이 결론 지을까.
갑이라 해도 옳고 아니라 해도 옳다ㅡ
다시 말해 각각 한 장면만을 떼어 놓고 설명할 때 아무 하자가 없다.
그러나 그 한 장면만이 답이라고 우기면 당장 엉맘진창이 된다.

하나님 친히 나와 지금 함께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천사를 보내신다고 하는 표현이 그와 같다.
함께 계심도 맞고 하늘에서 보내신다는 말씀도 맞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억지로 조화시키려 할 것 없고 그 두 가지 사실을 다 진실로서
수용하고 거기 적응하면 되는 것ㅡ이렇게 하면 무난할까.

알쏭달쏭, 싱숭생숭이 아니라 우리가 초자연계 자체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먼저다.
그렇더라도 그 확고한 증거(초자연계에 대한)는 요지부동이다.
이 요지부동이라는 현실에 우리의 닻(anchor)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자연계 기준의 잣대를 가지고 초자연계 일을 재고 헤아리려면
그야말로 장대 가지고 하늘의 별 따려고 덤비는 수준이다.
이러한 자연계 존재가 되어 버린 인간의 약점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헤아릴 있는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성경이 기록되게 하신 것이다. 아주 간결한 문장이 그 때문이다.

또한 말씀을 직접 전달할 매개가 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도들 간택도
일부러 무식한 어부(고기잡이)들을 주류로 삼으신 이유이다.
자연계, 초자연계 막론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만국 공통의 언어가 사랑이기 때문에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미리 선언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교만으로 통하는 지식(고전 8:1)으로는 
절대 불가능이 천국 입국이다.
사랑만 확인할 줄 알아 사랑하면 되는 것뿐이다.
여기에 잘난 척하여 기타 무엇이든 얹어 놓으면 완전히 왜곡된다.
자기의 잘난 지식에다 성경을 꿰어 맞추려 드는 한

성경 이해는 백년 아니라 만년 하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