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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9일 화요일

천사에 대한 고찰 (4)




성부와 성자께서 친히 나와 함께 계시는데 그러면 말 다 한 것이지
천사가 있어 경호원이라느니 수호 천사라느니 무슨 객쩍은 소리냐ㅡ
물론 그런 표현은 성경에 없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뜻인데
무엇하면 그런 말을 안쓰는 것도 좋다 상관 없는 일이다.

내게 할당된 천사라고 해서 꼭 내 옆에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니
영물은 우리 자연계 생물과는 달라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이기 때문.
천사가 의인 곁을 진을 쳐서 에워싸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고
항상 하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 얼굴을 뵙고 있다 해도 성경 그대로다.

우리의 자연계에 속한 뇌(腦)작용이 초자연계 몸일 경우와는
너무나 차이가 나므로 초자연계 일을 자연계적 관념으로
형상화하여 나타내기가 힘에 부치는 것이라 하면 대충 답이 될까.
어서 속히 초자연계 몸이 되어야지 하루가 갑갑하고 답답하다 하면 될까.

갑과 을이 둘이 하나되어 병인데 이것을 갑이라 보아도 되고
을이라고 해도 되는 한편 갑도 을도 아니라 할 수도 있다 하면
당장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굳이 결론 지을까.
갑이라 해도 옳고 아니라 해도 옳다ㅡ
다시 말해 각각 한 장면만을 떼어 놓고 설명할 때 아무 하자가 없다.
그러나 그 한 장면만이 답이라고 우기면 당장 엉맘진창이 된다.

하나님 친히 나와 지금 함께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천사를 보내신다고 하는 표현이 그와 같다.
함께 계심도 맞고 하늘에서 보내신다는 말씀도 맞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억지로 조화시키려 할 것 없고 그 두 가지 사실을 다 진실로서
수용하고 거기 적응하면 되는 것ㅡ이렇게 하면 무난할까.

알쏭달쏭, 싱숭생숭이 아니라 우리가 초자연계 자체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먼저다.
그렇더라도 그 확고한 증거(초자연계에 대한)는 요지부동이다.
이 요지부동이라는 현실에 우리의 닻(anchor)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자연계 기준의 잣대를 가지고 초자연계 일을 재고 헤아리려면
그야말로 장대 가지고 하늘의 별 따려고 덤비는 수준이다.
이러한 자연계 존재가 되어 버린 인간의 약점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헤아릴 있는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성경이 기록되게 하신 것이다. 아주 간결한 문장이 그 때문이다.

또한 말씀을 직접 전달할 매개가 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도들 간택도
일부러 무식한 어부(고기잡이)들을 주류로 삼으신 이유이다.
자연계, 초자연계 막론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만국 공통의 언어가 사랑이기 때문에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미리 선언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교만으로 통하는 지식(고전 8:1)으로는 
절대 불가능이 천국 입국이다.
사랑만 확인할 줄 알아 사랑하면 되는 것뿐이다.
여기에 잘난 척하여 기타 무엇이든 얹어 놓으면 완전히 왜곡된다.
자기의 잘난 지식에다 성경을 꿰어 맞추려 드는 한

성경 이해는 백년 아니라 만년 하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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