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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당분간 촬영자(필자)를 노출시키지 않는 이유는 오직 "아라비아 3년"








촬영자(필자)가 당분간 얼굴을 대중 앞에 드러내려 않는 이유는
거의 모든 사람과 스스로 원수를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각종 종교 교리를 상대로 
성경에 입각하여 모든 진실을 밝히고 있는지라
기득권 세력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어 좌시 방관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를 사전 예방하는 차원에서 모든 발표를 끝내기 전에는
일절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극심한 증오의 대상이 되니 각종 핍박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기피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고난 없는 전도는 있을 수도 없고 인생 구원에 필수 요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필자 역시 바울의 "3년간 아라비아 체류"(갈 1:16-18) 기간입니다.
워낙 뿌리 깊이 인위적 교리에 세뇌를 당한 터라 확고부동하게 성경대로
올바른 관점을 정립해 놓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뿐입니다. 
핍박이라는 외부적 방해 없이 말씀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 완료까지에는 이런 조처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로 남아 있어 "육신(자아중심)"에 있으면
즉 말씀 가운데 성장해 있지 못하면 분쟁이 필연입니다.
제각기 자기 선호하는 바를 따라(고전 1:12/3:4)
바울 파/派,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로 나누었듯이
루터파, 깔벵파 등으로 분파가 생깁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말했다"에 대한 관심을 버리시고
"누가 이런 말을 했으니 신뢰가 가고", 
"누가 했기 때문에 믿을 가치가 없다"로써 잣대를 대지 마시고
"성경과 일치하니까 또는 합하지 않으니까"로 가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항상 부지런히 읽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직접 성경을 통해 스스로 배우시고 깨달으시고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필자는 그 일에 오직 힌트를 드리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ㅡ오직 "소리"만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소리는 알아들으면 알아듣고 못알아들으면 못알아듣는 것입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고 내가 강요되는 것도 없습니다. 
듣기 싦으면 묵살하면 되고 그것으로 끝납니다. 
성령의 말씀이라 생각하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전도도 각자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요
교회를 가르침도 역시 각자의 양심에 스스로를 "추천"(고후 4:2)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 결과의 책임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한 마디 던져놓고 나몰라라는 식이란 뜻은 아닙니다.
야고보는 "함부로 선생이 되지 말라"고 충고 겸 경고를 했습니다.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는다"는 이유입니다. 
목회자 지망도 정말 불 타는 사명감이 없으면
아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막중한 책임을 어찌 감당하렵니까.
모세가 목회자의 사표인데 
"이 양떼들 버리시면 차라리 제 이름 생명책에서 지워 주십시오" 했습니다.  
자기 양떼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목자다운 목자라 하셨습니다(요 10:11).

당분간은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데 대해 
(예의상 부적절하다는 느낌이 드시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외국에서 보도되는 빅풋(Big Foot) 등도 필자가 목격했던 대로의 악령의 변장술



리더스 다이제스트 사가 간행한 세계 불가사의에 대한 책자를 보면
'빅풋'(거인과 같은 생김새의 괴물ㅡ또는 그런 거대 발자국을 남김에서 온 명칭)
을 촬영 혹은 목격한 이들의 증언이라면서
그 걸음걸이가 때로는 마치 허공에 부상한 채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하는데
바로 악령들이 자연계 육체로 스스로를 변환시켜 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DPA px 발자국도 그렇게 해서 생긴 것입니다.

필자가 과거 만난 악령도 바로 그런 유형입니다. 
따라서 필자만 본 것이 아니라 이미 외국에서도 
그런 '빅풋'이라는 이름으로 제법 알려지기 시작한 존재(들).
초자연계 몸이 자연계 육체로 변환되는 사례는
우리 주님의 부활하신 모습에서 역력히 드러납니다.
제자들에게 금방 나타나셨다가 이내 감쪽같이 사라지셨고
제자들에게 그 부활하신 몸을 보이시며
나는 살도 있고 뼈도 있다 하시면서
그 앞에서 음식을 잡수시기도 했습니다(눅 24:39-42). 

초자연계 몸의 초능력은 자연계 몸으로 얼마든 원하는 대로
변환 가능함을 이미 주님의 부활하신 몸으로 증명되었고
또 주님의 그러한 초자연계 몸의 부활에 대한 성경 기록의 진실성은 
오늘날 악령들의 변형술 또는 발자국 등으로 되물림해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발자국이 새 발자국도 아닌 짐승의 것인데도(사람 발자국은 물론 아니고)
몇 발자국 떼놓은 것이 박혀 있다가 갑자기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허공에 떴다가 잠깐 착지해서 걸은 뒤에는
곧장 다시 허공으로 떠 올랐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신/神(고후 4:4)들이 
지상에 내려 왔다가 올라갔다가 한 것이니 
인간을 꼼짝 못하게 장악하고 조종하는 압제자들.
첫 사람 아담은 비극으로 끝났으나
이제 그 빈 자리를 메꾸시고 그 위치를 회복하신 우리 주님 곧 "마지막 아담" 
즉 대칭 아담이시니 항상 주님과 함께 생활하기로
결사적으로 매달려(고전 7:32/고후 5:9)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힘쓰는" 나날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한 시도 저들의  속박과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주 절박한 상황에 현재 인생들이 놓여 있는 현실이니 항상 주의를 요합니다. 
그냥 강 건너의 일처럼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발 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이제는 실상을 안 이상 그에 마땅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상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천사에 대한 고찰 (5)





우리가 장차 "천사를 판단하는(고전 6:3) 위치에 있게 됨도
아담이 원래 영물들 위에 군림한 초자연계 존재였음을 말함이고,
여자가 긴 머리가 있는 것은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고전 11:10)라 했으니
여자가 영물들 다음에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아담(남자)이 영물들보다 먼저 창조되어
영물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사실과 대비되어 나오는 언급이다.
다시 말해 여자는 그러하나 남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함이니
남자의 머리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대칭 아담께서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한다"(벧전 3:22) 함도
이제 첫 사람 아담의 죄 값을 다 치르신
대칭 아담으로서 아담의 범죄 전 상태로
복귀하심을 이르는 표현 외에 달리 의미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로서의 위치라면 굳이 이런 표현이 필요 없는 것.

지금까지 천사나 그룹/스랍 간의 차이도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했다.
천사를 날개 달린 "그룹(cherub)"으로 항상 그려놓게 마련이고
사탄을 "그룹" 중 하나인 것처럼 오해한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사탄이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욕심에서 그렇다기보다
"옛 뱀"(계 12:9/20:2)이라는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 부린 꼼수.

한 때 인간 아래 있던 수하(手下)가 이 세상 신이 되어 있음을 알 때
인생들의 인식상 획기적인 변동이 있지 않을까 두려워 함이었던 것.
이런 점을 생각해도 얼마나 성경 해석이 엉망진창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순응하지 않을 때
사탄에 의해 완전히 헝클어져 있기가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입증.
계시록에 두 번이나 알아 듣기 쉽도록
사탄은 "옛 뱀" 곧 창세기에 나오는 그 옛 시절의 "뱀"이라고
밝혀 두어도 끝까지 고집대로 나가 무시해 온 것을 보면
알 만하지 않은가ㅡ인간의 현 실상을. 무슨 증거를 더 요구하리요.

이런 오묘하고도 민감한 영적 작용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방관자이듯 해서는 안되고
성경의 경고대로 하여 (벧전 5:8) 바짝 정신 차려야 하는 것.

사탄을 위시해서 악령들이나 네피림의 혼백들이 일시 즉 마지막 심판 전에
들어가는 구류소 또는 유치장 같은 곳이
무저갱(bottomless pit)인데 그곳의 염라대왕 격이 그 타락한 '그룹'.
당연하지 않은가. 같은 급의 천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룹'과 '스랍'은 계시록에 나오는 4 생물과 12 장로로 표현된다.
왜냐면 그들 외에 수많은 "천사"가 별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계 5:11).

그런즉 인간 외의 이러한 영물들이 실존함을 DPA pix로 확인됐으니 
마음의 요동 없이 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두드려
하나님의 친히 가르치심을 받는 은혜에 우리 모두 함께 들어갈 일이다. 


2017년 12월 19일 화요일

천사에 대한 고찰 (4)




성부와 성자께서 친히 나와 함께 계시는데 그러면 말 다 한 것이지
천사가 있어 경호원이라느니 수호 천사라느니 무슨 객쩍은 소리냐ㅡ
물론 그런 표현은 성경에 없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뜻인데
무엇하면 그런 말을 안쓰는 것도 좋다 상관 없는 일이다.

내게 할당된 천사라고 해서 꼭 내 옆에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니
영물은 우리 자연계 생물과는 달라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이기 때문.
천사가 의인 곁을 진을 쳐서 에워싸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고
항상 하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 얼굴을 뵙고 있다 해도 성경 그대로다.

우리의 자연계에 속한 뇌(腦)작용이 초자연계 몸일 경우와는
너무나 차이가 나므로 초자연계 일을 자연계적 관념으로
형상화하여 나타내기가 힘에 부치는 것이라 하면 대충 답이 될까.
어서 속히 초자연계 몸이 되어야지 하루가 갑갑하고 답답하다 하면 될까.

갑과 을이 둘이 하나되어 병인데 이것을 갑이라 보아도 되고
을이라고 해도 되는 한편 갑도 을도 아니라 할 수도 있다 하면
당장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굳이 결론 지을까.
갑이라 해도 옳고 아니라 해도 옳다ㅡ
다시 말해 각각 한 장면만을 떼어 놓고 설명할 때 아무 하자가 없다.
그러나 그 한 장면만이 답이라고 우기면 당장 엉맘진창이 된다.

하나님 친히 나와 지금 함께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천사를 보내신다고 하는 표현이 그와 같다.
함께 계심도 맞고 하늘에서 보내신다는 말씀도 맞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억지로 조화시키려 할 것 없고 그 두 가지 사실을 다 진실로서
수용하고 거기 적응하면 되는 것ㅡ이렇게 하면 무난할까.

알쏭달쏭, 싱숭생숭이 아니라 우리가 초자연계 자체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먼저다.
그렇더라도 그 확고한 증거(초자연계에 대한)는 요지부동이다.
이 요지부동이라는 현실에 우리의 닻(anchor)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자연계 기준의 잣대를 가지고 초자연계 일을 재고 헤아리려면
그야말로 장대 가지고 하늘의 별 따려고 덤비는 수준이다.
이러한 자연계 존재가 되어 버린 인간의 약점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헤아릴 있는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성경이 기록되게 하신 것이다. 아주 간결한 문장이 그 때문이다.

또한 말씀을 직접 전달할 매개가 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도들 간택도
일부러 무식한 어부(고기잡이)들을 주류로 삼으신 이유이다.
자연계, 초자연계 막론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만국 공통의 언어가 사랑이기 때문에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미리 선언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교만으로 통하는 지식(고전 8:1)으로는 
절대 불가능이 천국 입국이다.
사랑만 확인할 줄 알아 사랑하면 되는 것뿐이다.
여기에 잘난 척하여 기타 무엇이든 얹어 놓으면 완전히 왜곡된다.
자기의 잘난 지식에다 성경을 꿰어 맞추려 드는 한

성경 이해는 백년 아니라 만년 하청이다.


천사에 대한 고찰 (3)








다니엘서에도 보듯 악령들은 인간을 섬기는 거룩한 천사들을
가로막기도 하는 등 양 세력은 대치 상태에 있었으나 이제는 다르니
하늘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항구적으로 이 지상으로 추방됐기 때문(계 12:7).

그 전에 하나님의 두 증인과 적 그리스도가 전쟁을 일으켜
이긴다고 되어 있는데(11:7) 계시록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하는 것은
다른 역사서(복음서와 같은)와 같이 사건이 일어난 시간대별로
기술되지 않고 예언서의 특성상
장차 이루어질 한 장면씩 따로 떼어 개별적으로 설명해 가는 것이라
장절의 앞 뒤 순서는 무의미하다는 것.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와 "두 증인"과의 전쟁이
하늘의 전쟁보다 앞서는 사건이라 착각하지 말 것이다.
하늘의 전쟁은 이미 종결된 것이니,
1908년 6월 30일 시베리아 퉁구스 사건의 전모가 그것이다.

참고: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인간들의 전쟁과는 다른 초자연계 존재간 전쟁이라
하늘에서의 일체의 권위만이 상실되었다는 것뿐이지
패자가 승자의 노예로 전락한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면 각자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임무 수행에
모든 의미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패자로서의 사탄의 이 세상 임금(지배자) 위치가 몰락된다거나
승자인 거룩한 천사들이 이 인간 세계 지배권을 행사하는 등의 일은 없다.
물론 다니엘서에 보는 바와 같은 그런 마찰
즉 가브리엘이 미가엘의 도움을 받아서야 페르시아 군(君, prince) 일당을
겨우 제치고 다니엘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등의 일은
이제는 있을 수 없고 항구적으로 없을 것이다.

사탄 등 악령들이 영원한 멸망의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저와 같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대칭 아담과 그 교회와 맞서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사전 계획에 얼마든지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니 왕년의 에덴낙원에서 그러했기 때문.
아담을 자기 발 아래 쉽게 둘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이제는 그 대칭적 존재로 사람이 되신 대칭 아담이신지라
같은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도 충분히 그런 자세로 임해 주셨고
이렇게 한 번 정하신 것은 영원불변임을 사탄 자신도 너무나 잘 알기 때문.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로서
일방적으로 피조물들과 상관하심이 아니라
일정 규범을 정하시고 당신께서도 이를 준수하시면서
즉 원리원칙을 따라서만 모든 일을 하시는 그 증명이기도.

그래서 아주 철처한 공정공평 게임인지라
사탄도 얼마든지 자기 계획대로 해서 잘만 하면
인간과 영물을 최종 운명에 처하는 마지막 심판 때를
어느 정도 지연시킬 수 있고 그 사이 자기도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일종의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다.

그래서 대칭 아담의 천년 왕국의 종말기에 가서도
서슴없이 반역을 시도해보는 이유다.
일말의 희망이 없지 않다ㅡ좌우지간 해 볼 만하다는 것.
성경에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이러한 <원리원칙>하에 이루어지는 <공정공평>성을 담보로 하는 것.

그렇지 않다면야 하나님 일방적으로 해치우시면 간단히 끝날 일인데
예언이라는 형식으로 미리 말씀하시는 등의 일을 하실 리 없는 것.
즉 일방적인 우세 또는 열세로 단번에 결정 지어질 일을
소위 "계급장 떼고", "알몸의 일대일"로 겨루는 식으로
피조물과 상대하심이다.

모든 영/靈(인간의 영이든 영물이든)은 당신 자신에게서 난 것이므로
자유 의지를 허용하신 것도 그러한 의미에서이니
쉽게 말하면 비록 피조물이지만 창조주 당신처럼 대우하심이라 할까.

우리 인간을 대해서도 자신을 다 바치신 사랑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높으신 뜻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다 하겠다.
성자께서 우리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 곧 어버이이시지만
우리와 함께 된 한 아버지의 아들들 중 하나로 자신을
낮추시기까지 하신 그 피조물 사랑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

능히 그렇게 하시고도 남을 고결한 이상적인 품성이신 것이다. 



천사에 대한 고찰 (2)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성부의 얼굴을 항상 뵙는다"(마 18:10).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시므로 불변의 진실 그대로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님을 경외하는 자를 둘려 진 치고 저들을 건진다"(시 34:7)"
"작은 자" 곧 아이라 할지라도 그 천사가 배치되어 있음을 확언하신 것.

때문에 초대교회 당시 베드로가 천사가 나타낸 기적으로
감옥 밖으로 나왔을 때 그를 위해 기도하던 이들이 이를 믿지 못하고
"베드로의 천사"라는 말까지 했던 것이다(행 12:15).

수호 천사, 호위 천사란 말이 그래서 나오는데
단 "변함 없이 주(인) 예수님을 사랑하는"(엡 6:24)자에 한한다.
"모든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하나님의) 상속자들을 위해 섬기라고 보내시는 것"(히 1:14).

때문에 대표적으로 그 사례가 나타난 것이 기록되어 있으니
주님께서 시험 받으시던 때(마 4:11) 그리고 기도하실 때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님께 나타나 힘을 도왔다"(눅 22:43).
시험 받으시던 현장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시험을 이기신 후에 나타난 천사.
이 의미는 나 홀로 당하는 순수히 나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결정으로
좌우가 정해지는 것이 시험의 성격이므로 그러하다.

시험 후에만 천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 내용의 핵심은
우리가 시험 받을 때 일절 하나님의 간섭이 없으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따라서 시험 후에 천사가 수종 들었다 함은 그 후 연속적으로 수종 든다는 뜻.

그런즉 누구나 믿노라고 고백하고 세례 받는다고 천사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즉 구원됨이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로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약정,
그 순간부터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는 자에 한해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경호원/안내원이 따라 붙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지막 심판 때까지 동일 보조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면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는 바 세상 끝에도 이러할 것이니 즉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을 것이며 거기서 울면서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마 13:47-50).

세상의 비신자가 아닌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신다"고 하신 점에
주목할 일이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라(마 16:27)
하심과 동일한 의미이다.
믿음의 유무, 믿는 여부를 따라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나게 마련이고
믿지 않고는 행함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니
불가능한 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 심판하신다는 말은 언어도단.
행할 수 있음에도 즉 은혜의 능력을 받고도 행하지 않음이
여기서 말씀하신 "악인"인 것이다.
이 세상의 악인들을 새삼스럽게 "악인"이라 하실 까닭이 없는 것.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씀이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는 것으로서 우리가 주님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한다"(고후 5:9-11) 한 후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고후 5:14-15)이라 함과 같다.


인간 개개인의 사정을 악령들이 속속들이 알고 다 기억하여
전생 또는 환생이라 속이면서 죽은 자 행색을 나타내는 것인데
거룩한 천사들이야 더더욱 인간의 선과 악을 낱낱이 기록할 터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마지막 심판 때 책에 기록된 대로 그 운명이 정해진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 받으니"(계 20:12/단 7:10).

그런즉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으면 저주밖에 없어"(고전 16:22)
그런 이에게 계속 천사들이 따라 붙을 수는 없는 것이니
"변함 없이 주님을 사랑해야만"(엡 6:24) 하는 것으로서
왜냐면 그런 이들에게만 "하나님의 은혜"가 적용되는 까닭이다(;24). 


천사에 대한 고찰 (1)



악령에 대해 쉴 새 없이 언급해 왔으니
그와 속성이 똑같은 "거룩한 천사"들에 대해
성경에 나타나 있는 사실대로 말하면,
사실상 우리 인간이 영물/靈物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몇 가지만 가지고 유추해서 상상하는 것뿐이다.

짝을 이룬 소미립자가 하나가 엎스핀이 되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다운스핀이 되듯이 반대로만 이해하면 된다.
즉 짝이니까 본질은 같으나 속성이 다르다는 것.
사람은 같으나 악인과 의인으로 구분되듯이.

다시 말해 형상으로는 선과 악이 식별되는 것이 아니고
그 행위로써 드러나는 것인데 이미 靈物들은 선악이 결정되어
그 영원한 운명까지 정해진 마당에 용/龍이면 龍, 또는 미가엘이면 미가엘,
(龍은 자연계의 "뱀"과 대칭인데, 미가엘은 무엇과 대칭인지는 현재는 모름)
이렇게 그 명칭만으로도 충분히 선악이 구별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제 이 세상에서 그런 구별이 되어 가는 것인데
마지막 심판이 되어 보아야 확연하게 구별된다.
이 세상에서 악인으로 굴다가 회개 없이 그대로 죽으면
그 죽을 임시에는 악인으로 판정이 되는 정도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龍이든 靈物에 대해서든 미가엘에 대해서든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지만 일단 영원 세상에 임하고 보면
모든 것은 대낮같이 저절로 알아질 것은 물론이다.
고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의 지식으로만 충분하지
기타 다른 것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낼 아무 권한이고 없다.

DPA pix는 이러한 靈物/영물의 "본질"을 밝힘에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초자연계 육체의 육질(肉質)을
생긴 그대로 (단편적으로나마) 들여다보는 매우 소중한 자료, 증거, 기회다.
흉측하게 생긴 악마 등의 형체(형상)는 그들 임의에 의한 변장술.

다시 말해 그들이 아담 아래에 있던 에덴낙원의 "각종 짐승"임을 숨기고
원래부터 따로 악마라는 존재가 있었듯이 가장하려는 술책.
그러나 거룩한 천사들은 당연히 변장을 해도 사람으로서
자신을 나타내는 것 외에는 달리 하지를 않으니까
여러 형상으로 상상할 필요는 없고 단지 광채 나는 인간의 형상
이 정도로 알면 지금 이 세상에 처한 우리로서는 충분하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그 본질적 형체만은 DPA 그대로다.
그래서 DPA를 APA(Angels' Practical Appearances)라 해도
전연 손색이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게 된다.
즉 DPA는 악령의 실제 현현(顯現)이라기보다
영물(celestial being)의 현현이라 이름을 고쳐 불러도 무방하나
발자국과 NSO(Nephilim Soul Orb)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이를 총칭하는 것이라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따라서 DPA pix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령들의 실체를 폭로함이기도 하고
초자연계와 초자연계 존재를 입증하는 소중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후자 쪽에 무게가 더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1분11초 짜리 비디오에 나오는 그들의 육질은 사람 피부마냥 매끈하다.
이미 소개한 3분 짜리 비디오 2편, 16초, 43초 짜리의 형체도 그렇지만
1분11초 비디오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혹 체모(體毛) 같은 것이 보이기는 하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인 인간 역시 체모는 있게 마련이므로
특이한 점이라고는 할 수 없고
단 1분11초 비디오(곧 상세 설명하게 됨)는
다른 비디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靈物 특유의 강렬한 섬광이
유일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물론 사진상으로 그러니까
그냥 백색으로만 나오게 되는 것이나 번개 치듯 함을 볼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바울 사도의 이전 이름)에게 나타나실 때의
초자연계의 몸만이 나타낼 수 있는 영광 그대로다.
초자연계 존재로써 초자연계의 실존을 입증하는
희귀한 증거물로서의 DPA pix 가치는

백 번 강조해도 좋다.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성/人性이 변혁되지 않는 한 여전히 삶은 살풍경





스마트폰을 당시 최고 좋다는 것으로 최고가의 월부 판매에 응하여 
사용하다보니 2년도 채 안되어 습기가 차기 시작 작동이 안되어 새로 
다시 다른 회사 제품을 2년 계약으로 역시 최고가에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2년 만료가 되기 무섭게 일부 중요 기능이 마비되어 버렸다. 
처음의 것은 쌀자루에 집어넣어 2년 썩힌 결과 습기가 제거되어 
귀중한 자료도 살아나고 옛 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생각은 되나 
신뢰는 가지지 않는다. 

덕분에 난생 처음 카메라로 사진이라 찍는답시고 흉내 내다가 
처음 스마트폰으로는 NSO는 물론 DPA 사진과 비디오
(제1호 14초 동영상 및 제2호 1분11초 동영상 그리고 16초 짜리 비디오 등)
를 뜻밖에 찍고, 두 번째 것으로는 이미 소개한 3분여 짜리 
중요 DPA 비디오 두 점을 얻었으니 
200만원 가치 이상 본전은 뽑았다고 자위해본다. 
그 이상의 비용을 들인들 어디 가서 언제 이런 소중한 것을 입수할 수 있겠는가.

속고 속이는 세상이다. 
장사가 안되기 때문에 제작할 때부터 2년만 
정상 가동 수명이 되도록 해둔다는 것이다. 
필자도 처음 이를 알았다면 매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고가로 사면 오래 갈 줄 알았으니 바보 노릇한 셈이나 
그 대신 DPA pix가 탄생했으니 그나마 위안은 된다. 
학 기술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시점이라 
아주 행복하게 살 듯하지만 
사실상 인간 샤회는 더욱 야수의 '정글의 법칙'만 
더욱 기승을 부리며 옥죄어 드는 느낌이다. 

죄짓지 않고는 못사는 세상이라 한다.
이런 세상에서 헛되이 살고자 하는 미련을 못버려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죄인 의식에서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비명을
바울 사도 자신의 믿은 후 체험이라는 망측한 교리를 만들어
지금까지 자기도 속고 남들도 속여 온 것이다.

누가 이런 세상 살라고 했는가.
성경에서, 절대로 살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요 12:25).
그런데도 말씀을 무시하기가 이 정도다. 
말씀을 골라 가면 믿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누가 그런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했는가. 

그러므로 자기 부인의 이상향적 삶이 구현되지 않는 한 
서로 죽이고 죽는 공멸(共滅)의 자아중심만이 언제 어디서나 판 칠 뿐이다. 
3위1체의 법칙에서 대칭으로만 존재하므로 그 중간 지대는 없다. 
생명 아니면 죽음, 딱 둘로만 갈라진다. 
흑백 논리만 통하고 희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기루의 단 꿈에서 깨어 황야(광야) 
사막의 현실에 똑바로 직면해서 살필 일이다. 
되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오로지 인간 개조, 새 창조의 하나님 사업에만 매진해야 
천국 들어가는 입국 사증을 취득하게 된다(마 7:21).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로만 
지금까지 잘못 가르쳐 왔고 잘못 배워 온 것이다. 
처음 창조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셨고 
지금은 하나님의 직접 양자들로서 새로 창조되고 있다.
인간 로봇을 만드시자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함인데(벧후 1:4)
그런 피동적인 존재일 수는 없는 것이다. 
주인 의식에서의 능동성, 적극성이 
하나님의 성품에 속하는 영적인 것의 주된 특징이다. 
그래서 각자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미 창조되었기 때문에 주체 의식을 발휘하는 것이지 
내가 나 자신을 창조한다는 뜻이 아니니까 헷갈릴 이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인간 로봇을 만드시는 것처럼 오해 착각하는 것이다. 
해괴한 논리 속에 아무 의심 없이 안주하고 있으니 
이 세상 神의 농락에 찌들어 있다는 증거다. 
직접 성경을 읽음으로써 진리의 문을 부지런히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중도에 그만 둠이 없이) 
두드려야 성령 친히 가르치시는 은혜에 들어가게 된다. 

새 창조만이 은혜의 영역이다. 
물론 창조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지, 
피조물이 처음부터 지닌 피조물에 속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이다. 
이것을 새 창조에서는 "은혜"라 하는 것이다. 첫
창조에서의 창조는 은혜가 아닌 이유다.  
일단 창조되었으나 
인간의 자업자득으로 야기된 멸망의 위기에서 구제됨으로써
새 창조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은혜, 긍휼, 하나님의 무한 자비인 것이다. 
창조의 특성상 모두가 하나님 주신 힘이므로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영원히 은혜다. 

단지 아담과 영물들의 일부 소행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 
자기 자신을 생명으로부터 스스로 격리시키는 만행을 
서슴지 않는 결과를 낼 뿐이다. 
이런 전례를 우리는 두려워하고 떨어야 하는 것이니, 이는 마땅하다. 
미리 택하심 받았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남에 내게 대하여 혹 할 수 있거나(살전 1:4) 아니면 
그렇게 미리 정하시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오로지 우리의 몫은 베드로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우리 자신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스스로 굳게 하는"(벧후 1:10) 것 외에는 없다.  


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성경의 진실성은 자체 증명되는 것이지 한참 하위급인 자연과학으로 입증되지 않음을 알아야




아담이 에덴낙원에서의 초자연계 존재였다가 범죄함으로써
자연계 육체가 되어 죽음이 왔다는 설명이 성경.
자연법칙밖에 모르는 (자연)과학은 이를 말짱 무시하고
원숭이가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는 소위 진화론을 비롯해
신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 등 갖가지 억측의 미신
(여기에 신/神이 개입되지 않아 "신화"가 아닐 뿐 신화 이상의)
을 믿어 왔으니 이렇게 간격이 벌어질 대로 벌어진 (자연)과학과 성경,
어느 쪽이 옳으냐ㅡ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합니다.

성경은 자연과학이 알지 못하는 자연계와 초자연계와의 대칭성 원리를
처음부터 밝혀 왔으니 말할 것도 없이 성경이 단연 우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진화론은 이제는 죽어야 합니다.
진화론=과학, 과학=진화론이라는 등식은 
진화론이라는 신화 아닌 신화의 세뇌 작용이었습니다.
이 세상 신이 악령 사탄이기에 지금까지 온 인류를 그렇게 속임이 가능했습니다.

말 그대로 신(고후 4:4)의 위력이요 그 앞에서 육체(인간)는 쪽도 못씁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까지 각급 학교에서 진화론을 신주 모시듯 위하며 가르침이었으니
이것이 말도 못할 자괴감 들 정도의 웃음거리ㅡ이 세상 인생들의 현주소.
인간은 이 세상 임금인 악마 앞에 
꼭두각시의 놀음밖에 못한다는 무서운 현실의 입증.

과학은 자연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그 중요성을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탄은 단지 이 과학이라는 "위세"를 빌려 인생들을 왕창 속인 것이요
인간은 여기 맥없이 넘어간 것뿐입니다. 자초한 결과입니다.
왜 자업자득이냐, 성경을 제대로 부지런히 읽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만 주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열심히 읽고 인간의 성경 해석에만 의존해서 몰려다닌
자살 들쥐(lemming)의 행티(행태가 아닌 "행티"가 우리말)만 부리지 않았다면
이다지도 속아 넘어가는 기막힌 일은 없었을 테니까.

성경의 진실성의 자체 증명은 
이런 에덴낙원이 초자연계였다는 사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중요한 대목을 말하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를.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 인간이라면 인간은 모두 
이 한 세상 어떻게든 살기를 바라는데,
이 세상 사랑하지 말라, 세상에서 자기 생명 미워하라 하실 때는
인간이 도무지 할 수 없는 말임이 이미 입증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만일 거짓말쟁이가 지어낸 것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그런 말을 누가 믿는다고 감히 입 밖에 내겠느냐 그 뜻입니다.
거의가 아니라 아마 전부 귀를 기울이지 않을 터인데 
무엇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애써 만드나요.
바로 이런 것이 거듭 강조하지만 성경 진실성의 자체 증명입니다.

그런데도 우습게도 거꾸로 모두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이해하지 않다 보니
즉 이 세상 얼마든 살면서(죄를 좀 지어도 그래서 양심의 가책은 받아도)
죄인으로서 구원 얻는 것이 은혜라는 사탄의 교리에 속고 있었으니
이런 자체 증명이 통했을 리가 이런 소중한 증거를 알아 볼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기본적 기준(성경의 진실성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대한)이 정해지면
성경과 반대되는 그 어떤 소위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에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이기에 착오를 일으키기도 하고 미처 미치지 못한 지식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더군다나 이 세상 지배자가 사탄이므로 얼마든 그럴 듯하게 조작할 수도 있기 때문.
오늘날 진화론이 퇴색 일로에 있는 것처럼 한물가는 사태가 속속 벌어질 수 있는 것이
이른바 "과학"입니다.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빙자한 <성경에 배치되는 내용>을 말함인 것.
이제 진화론이라는 학습 효과를 얻었으니 차후 그 어떤 또 새로운 속임수가 밀어닥쳐도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는 아마 자연계에 속한 과학보다는 초자연계에 속하는 기적으로써
사탄은 한 몫 보려고 덤빌 것입니다. 물론 "과학"이는 "미신"까지 병용해서ㅡ.
"21세기 최첨단 과학 지식"이라는 미명하에.





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예수 그리스도의 초자연계 몸으로서의 부활을 입증하는 것이 DPA pix



DPA pix는 단순히 악령의 존재를 입증하거나
초자연계 존재를 증명하는 등의 의미보다 더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초자연계 육체로서의 부활에 대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아담이 초자연계 몸이었다든가, 성경의 진실성이라든가 하는 기타의 사실도 
일시에 한꺼번에 보다 확정적으로 최종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바람처럼 공기처럼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며
(바람은 감촉만은 있어 자연계에 속한다는 것을 알지만)
DPA, NSO는 전연 그런 것도 없으니 초자연계에 속하는데
그런 것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이 이제 확인된 터라
우리 주님의 부활도 그런 초자연계 몸으로서의 특이 현상에 대해 <일절 아무 설명 없이>
생긴 사실 그냥 그대로 기술하고만 있으므로 더욱 그러합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부활이 허구이고 지어낸 것이라면 구차하게 설명을 해놓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성자/聖子이시기에 그렇다는둥 여러 가지로ㅡ.
그렇게 거짓말로 설명하기 귀찮으면 그런 식의 초자연계 현상으로 부활했다고
애당초 지어내지를 않습니다. 그냥 자연계 몸 그대로 부활했다고 하면 그뿐입니다.

고로 이 DPA pix로써 대칭 아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사실을 효과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대칭 아담께서 아담의 자연계 몸의 원인을 제거하셨은즉
(죄로 인해 사망이 왔기에 자연계 몸이 된 원인이 드러난 것인데)
이제 그 죄 값을 다 치르고 난 다음의 순서는 당연히 초자연계 몸의 복귀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위치에 오셨으므로 아담으로서 밟을 과정을 다 밟아 가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옷을 입는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진화의 결과라면 짐승은 다 추위에 견디는 장치/구조(털북숭이)가 되어 있는데
인간만은 전연 그렇지를 않아 옷을 입어도 얼어 죽습니다. 
진화를 했다면 얼어죽지 않도록 피부나 기타 기능이 진화했어야 합니다.
옷이 단순히 진화된 인간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단장을 위한 것이라면 
솔로몬의 부귀영화로 입은 것도 들에 피는 꽃만도 못하다 하신 대로  
아름답게 몸을 치장할 필요 없이 몸 구조 자체가 옷처럼 화려하게 돼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후 몸이 초자연계 몸이 되신 것은 아담의 범죄 전 초자연계 모습 복귀이고
이와 같이 많은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까닭에 이 DPA pix로써 전도의 말문을 열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3운법칙, 3위1체의 법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래 비디오에 나타난 사실들은 악령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오늘날과 같은 UFO 등의 속임수를 위해  사전 준비를 해 왔다는 증거입니다.
총합 8천 마리 소를 빨아 당겨서는 내장 등 필요한 부분만 절취했다는 것은
요즘 인터넷에 나도는 대로의 소위 E.T. 또는 "외계인" 등의 생체 인형을 만들기 위한 재질 확보 차원.
필자가 목도했던 머리에 두 뿔 난 악령이 사람을 때로는 납치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라고 확정지어도 좋은 것입니다. 
악령들은 초능력이니까 우리 상상 외의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페루 나즈카 평원의 악령들의 무늬 도안 있는 지역에
"외계인 미라"라는 소동이 과거 벌어졌다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5EFyF6iSBvA

UFO가 8천마리 소를 납치해서 일부 장기를 뽑아내고는 버렸다는 소동
https://www.youtube.com/watch?v=Mkuz72N29lM



참고:
http://trinitrinia.blogspot.kr/2016/03/1908-tungus-eventthe-great-tungus.html
시베리아 퉁구스 사건
(용이 천사들과의 우주 전쟁에서 대패하여 
영구적으로 이 지상에 추방 당한 당시의 광경)